그냥 존재해라
대학교에서 들은 수업 중에 기억에 많이 남는 수업이 몇가지 있다. 그중에 하나가 겨울방학에 수강한 <한국의 한자와 한자어이다>. 수업 이름만 들으면 한자와 한자어만 배울 것 같아 보이지만, 그러지 않았다. 10권 남짓의 책의 일부분을 읽었고, 나에게 이 수업의 알짜는 바로 이 수업에서 읽은 책들이었다. 정말로, 정말로 훌륭한 책들만을 강사님(지금은 교수님이 되었을수도)이 선별하셨다.
그 중 하나가 <<고양이 철학>> 이었다.
고양이 철학이 다루는 내용은 왜 인간은 불행한가? 였다. 바로 답을 하자면 인간은 자신의 행복에 대해서 생각하기 때문에 불행하다는 것이다. 아무 생각이 없고 그저 존재하는 고양이는 불행하지 않다. 고양이는 자신이 어떻게 해야 행복해지는지, 왜 불행한지를 애당초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토록 유쾌하고 근본적인 답이 또 없다. 하지만 한편으로 뜬구름 잡는 소리이기도 하다. 왜냐면 그걸 안다고 해서 현실적으로 불행을 벗어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책의 내용을 조금 더 보자.
이 책에서는 매우 중요한 개념을 설명한다. 바로 파스칼 (수학시간에 배우는 그 파스칼 맞다)이 소개한 “기분전환”, 프랑스어 divertissement 이다. 기분전환의 예시로는 음주, 게임, 사냥 등이 있다.
사람들은 그저 가만히 있는 것을 하지 못한다. 항상 지루함을 견디지 못해 divertissement를 찾는다. 파스칼은 이는 진정한 행복이 아닌 헛된 몸부림이라고 보았다. 인간의 불행이 방에 혼자 조용히 머물지 못한다는데서 온다고 보았다.
이후 나는 <<내명소통>>, <<회복탄력성>>으로 유명한 김주환 교수님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며, 내 지난 25년 간의 인생 경험과 결합해 내가 항상 되새기면서 살게 되는, 일명 5계명을 만들게 되었고, 그 중 하나가 Just Exist이다.
앞서 언급한 파스칼은 인간이 아무것도 안하는 것을 하지 못해서 고통스럽다고 했다. 생각을 달리 해보자. 우리는 아무것도 안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할 것이다. 다만 그것이 당신의 마음을 본질적으로 평온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을 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존재하는 것이다. 단, 존재하기만 하는 것이다. 다른 divertissement를 찾아서는 안된다. 그럼 아무것도 안하는 것이랑 뭐가 다르냐고? 그건 당신이 생각하기 나름이다. ‘나는 존재한다’와 ‘나는 아무것도 안한다’. 둘 중에 전자로 생각하기만 해도 존재하기만 하는 게 수월해진다.
일본에서는 어린 아이들을 교육하기 위해 1시간씩 아무것도 안하고 정자세로 앉아있게 만든다고 한다. 달리 생각하면 그들은 한 시간동안 존재하기만 하는것이다. 단, 정자세로. 이것을 일본에서는 “我慢(がまん)” 라고 부른다. 그 뜻은 인내, 일본식 음독으로는 “가만”, 한국식 음독으로는 “아만”이다.
“가만”은 아무런 기분전환을 추구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Just Exist와 비슷하다. 하지만 다른 점은 Just Exist는 무조건 정자세로 앉아 있지 않아도 된다는 것 (누워있어도 됨),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존재한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한다는 것, 그리고 그냥 존재하기만 해도 된다라는 생각을 품고 있다. 꼭 다른 거 안해도 돼. 그냥 존재하기만 해도 돼, 라는 생각을 품고 있어야 한다.